제4장
서미희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으며 격렬하게 기침을 해댔다.
그녀의 등은 몹시 가냘팠고, 허리를 구부린 모습은 금방이라도 폐를 몽땅 쏟아낼 것 같았다.
서북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꾀병 부리면서 약한 척한다고 내가 널 안 혼낼 줄 알아? 학교에서 서아 잘 챙기고, 물도 떠다 주고, 밥도 대신 타 오라고 했더니, 되레 아픈 애한테 네 밥을 타 오게 만들어? 호의를 베풀어 줘도 고마운 줄은 모르고, 일부러 서아를 발로 걸어 넘어뜨려? 네 양심은 개나 줘 버렸냐?”
서미희는 기침을 참으며 말했다. “안 밀었어요. 자기 혼자….”
“서아가 중심을 못 잡고 혼자 넘어졌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런 어설픈 변명을 내가 믿을 것 같아? 네가 일부러 그런 거 인정해, 안 해?”
서미희의 눈시울이 뻑뻑해졌다. 그녀는 등을 꼿꼿이 폈다. “인정 못 해요.”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뺨 위로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불타는 듯 화끈거렸다.
하지만 얼굴의 통증이 아무리 심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만 하지는 못했다.
아픔이 무뎌질 정도였다.
“북현아, 왜 손부터 나가?”
서남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분노에 찬 서북현을 붙잡았다.
“남윤이 형, 저렇게 악독한 짓을 저질러 놓고 인정도 안 하잖아. 난 저렇게 악랄하고 뉘우칠 줄도 모르는 동생 둔 적 없어!”
김서아는 문가에 서 있었다. 손에는 붕대를 감은 채, 한껏 가련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입을 열었다. “북현 오빠, 다 내 잘못이라고 했잖아. 미희 언니랑은 상관없어.”
“서아야,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내가 오늘 서미희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놔야 돼. 더 나쁜 길로 빠지기 전에!”
서북현이 다시 손을 들려던 순간, 주우지가 의자를 드르륵 끌었다.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서미희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주우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였다. 그의 눈매는 맑고도 차가웠다. “학생 보호자 되십니까?”
서남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가 얘 오빠들입니다.”
“고열 39도에 감염 의심 소견 있습니다. 추가 검사가 필요해요. 게다가 저혈당에 영양실조 기미도 보이고요.”
서북현은 다소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아프다고?”
그는 서미희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꾀병을 부리는 줄로만 알았다.
주우지의 목소리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쪽들이야말로 눈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해 봐야겠네요. 이렇게 뻔히 보이는데도 모르는 걸 보면.”
저 애는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에 병색이 완연한데, 아픈 걸 알아보기가 그렇게 어렵나?
서북현은 말문이 막혔다. “너 지금 무슨 뜻이야!”
주우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글자 그대로의 뜻입니다. 댁들 집에서 데려와 키우는 동생이라지만, 기왕 키우기로 했으면 책임은 져야죠.”
서미희는 ‘데려와 키우는 동생’이라는 말에 눈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서남윤이 서둘러 해명했다. “제 친동생입니다. 입양한 게 아니고요.”
주우지는 눈썹을 치켜떴다. “돋보기라도 들이대야 알겠네요. 보호자라고 안 했으면 미성년자 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할 뻔했습니다.”
서북현은 서미희의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보고도 좋지 않은 말투로 쏘아붙였다. “네가 뭘 알아. 난 얘를 가르치고 있는 거야!”
서남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서미희가 김서아처럼 물에 빠졌다고 병이 날 만큼 약하지 않고, 건강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서북현은 주우지를 경멸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넌 모르겠지만, 서미희는 책임 회피하려고 꾀병 부리는 게 일상이야. 이번엔 일부러 서아까지 다치게 했고. 서아 아버지가 쟤 구하려다 돌아가셨는데, 가끔은 정말 쟤 심장을 파내서 색깔이 검은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라고!”
서미희는 목구멍이 불타는 듯 아팠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을 믿어 주지 않을 테니까.
김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괜히 서툴러서, 미희 언니 밥을 타 주겠다고 괜히 나섰어요.”
“확실히 네 잘못이 맞네.”
주우지의 눈매가 서늘하게 빛났다. “아파서 링거까지 맞고 있으면 교실에 가지 말았어야지. 아픈 거 알면서 남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네가 약하니까 네가 다 옳다는 식의 태도도 집어치워.”
서미희는 순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의 독설가 보건 교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편을 들어 주다니.
그는 나를 믿어 주는 걸까?
서미희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생판 남도 아는 당연한 이치를, 그녀의 오빠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김서아를 편애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김서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남몰래 이를 갈았다. 이 보건 교사, 지금 무슨 뜻이지?
자신이 아픈 몸을 이끌고 서미희의 밥을 타 주려는 걸 못 봤나?
어째서 이 보건 교사는 자신의 착한 마음에 감동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미희의 편을 드는 거지?
이건 아닌데. 이 방법은 언제나 효과가 있었는데.
김서아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잔뜩 위축된 채 고개를 숙였다.
서북현이 김서아를 감싸며 나섰다. “서아가 아픈데도 학교에 온 건, 수능이 백일도 안 남아서 수업을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야. 서미희랑 관계를 풀어 보려고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건데, 어떤 인간이 그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서미희는 그저 비웃음만 나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넷째 오빠는 김서아를 잘 돌보고 시중도 잘 들라고 신신당부했다. 자기가 그런 일들을 하는 건 공부에 방해가 안 되나?
수능이 백일도 안 남았다는 걸 그 역시 알고는 있었구나.
단지 자신의 시험은 김서아의 시험만큼 중요하지 않았을 뿐이다.
서남윤이 입을 열었다. “북현아, 넌 일단 서아 데리고 집에 가서 쉬게 해.”
“남윤이 형!”
“내 말도 안 들을 셈이야?”
서북현은 입을 다물고 김서아를 데리고 나갔다.
보건실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서남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미희야, 네가 김서아 돌보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서미희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은 목이 너무 아파서 한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더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미희, 너 계속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면 나도 더는 네 편 못 들어줘.”
서남윤도 화가 치밀었다.
그는 손을 뻗어 이불을 확 걷어냈다. “나랑 집에 가서 얘기 좀 해!”
오늘은 반드시 서미희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김서아가 더는 상처받게 둘 수는 없었다.
주우지가 서남윤의 팔을 누르며 막아섰다. 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병 다 맞고 가야 합니다. 보호자분은 밖에서 기다리세요.”
주우지의 눈빛은 오만할 정도로 차가웠고,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미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남윤 오빠 앞에 버티고 선 그의 뒷모습은 더없이 커 보였다.
그의 손목에 흉터가 하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붉고 흉측한 자국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자신의 다리에도 비슷한 흉터가 있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남은 것이었다.
설마 그도 교통사고를 겪었던 걸까?
서남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난 얘 오빠입니다. 집에 의사도 있으니 데려가겠습니다.”
“집에 의사가 있는데 왜 애가 이렇게 열이 나도록 내버려 뒀습니까?”
서남윤은 서미희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다소 찔리는 듯 대답했다. “애가 아프다고 말을 안 했습니다.”
게다가 아침에 서미희의 이마를 짚어 보려고 했을 때, 그녀가 자신의 손을 피하지 않았던가.
이게 자기 탓인가?
어쩌면 서미희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일부러 병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주우지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서렸다. “선생님, 만약 강제로 학생을 데려가려 하시면 미성년자 학대로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법규에 따라 가정 폭력을 당한 아동은 신변 보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난 얘 친오빠고, 보호자입니다!”
“하지만 방금,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당신들이 얘를 때리는 걸 봤습니다. 여기 CCTV도 증거로 남아 있고요. 경찰이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리라 믿습니다.”
주우지는 침착했지만,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 학생은 지금 당신들과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강요할 자격 없으세요.”
서미희의 심장이 작게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남자를 몰래 훔쳐보았다.
